[인터뷰]신예 스탠드업 코미디언·작가 원소윤의 ‘꽤 낙천적인’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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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 농담’이라는 머리글이 붙은 이 유튜브 쇼츠는 691만 조회수(28일 기준)를 기록했다. ‘친구가 없다’는 둥 ‘서울대도 들어갔는데 클럽은 못 들어간다더라’는 둥 고해성사는 분명 진지한데도 웃기다.
하지만 이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자신을 소재로 삼은 농담을 다 마친 뒤 여유롭게 씩 웃어 보이는 원소윤의 태도다. ‘찐따 서울대생’이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만들고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래, 너희가 웃었다면 됐다’는 듯 후련한 얼굴을 하는 그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그런 원소윤이 이번엔 장편 소설 작가로 대중 앞에 섰다. 지난 18일 출간된 책 <꽤 낙천적인 아이>(민음사)는 그가 6년여에 걸쳐 쓴 ‘자전적’ 소설이다.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28일 만난 원소윤은 “나만 알고 있기 아까운, 흥미로운 이야기란 생각에 시작한 책”이라며 “서늘한 유머를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 과정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책은 주인공 ‘나’의 시점으로 3대째 가톨릭인 가족 이야기를 담는다. ‘나’에게는 세 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첫째 오빠가 있다. 매년 기일이 다가오면 넋을 놓는 듯한 엄마를 10살의 ‘나’는 걱정한다. 지진을 느낀 어느 날, 대학생이 된 ‘나’는 타워크레인 위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위험할까 봐 걱정한다. 도피처가 되어주던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땐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가족을 잃어본 적 있는 이들은 또 다른 상실을 걱정하고 피하지 못한 이별 앞에 울다가, 웃을 계기를 놓치지 않으며 또 살아간다.
실제와 무관하다고 변명하기 바쁜 드라마·영화 시작 전 경고 표지와 달리 책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명, 지명, 사건 등은 어느 정도 실제와 관련이 있다”고 선언하고 시작한다. ‘나’의 이름도 원소윤이다. 원소윤은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생각하게 하는 구성을 자신의 “악취미”라고 표현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면 오히려 실화겠다 싶지 않나요? (이번 소설은) 상상 이상으로 픽션(지어낸 이야기)이에요. 선을 긋고 싶었다면, 다른 이름을 썼어도 됐겠지만 전 ‘원소윤’이라는 이름을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자연인 원소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는 게 재미있으시다면, 그렇게 읽어 달라”며 예의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자신을 소재로 삼는 것에 부담은 없냐’는 질문에 원소윤은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소재였다면 노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몇 가지 단어로 사람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어떨까. 챕터 사이사이에 실린 ‘오픈마이크 대본’ 속 사회자는 원소윤을 “서울대 출신”이라거나, “채식주의자”라거나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다. 원소윤은 “제가 제 입으로 얘기하기보다 그렇게 호명되는 일이 많다”며 “그렇다면 그 소재에 걸맞는 농담을 내가 들고 있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했다.
책의 제목처럼 원소윤은 ‘꽤 낙천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민음사의 박혜진 편집자가 제안한 책 제목에서 원소윤이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꽤’라는 부사가 주는 냉소적인 느낌이다. 그는 “‘나’가 밝고 희망차고 기운 넘치는 아이는 아니지만, 하루하루 살아내는 그만의 낙천성을 ‘꽤’라는 단어가 잘 눌러 표현해 준다”고 했다. 평소 존경하던 정희진 여성학자에게 책의 추천사를 받은 것은 그가 이번 책으로 얻은 또 다른 기쁨이다.
원소윤은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빌 브라이슨, 움베르토 에코, 에마뉘엘 카레르, 박민규 작가 등의 책을 아낀다. 글을 직접 쓰기 시작한 건 대학생 때인 22살쯤부터였다.
“놀이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사람도 돈도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전시 해설이나 시립 상담 단체에서의 활동가 일을 한 적도 있지만, 오래 다니지는 않았다. 글방에 나가 글을 쓰고 합평하는 일은 원소윤이 꾸준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책과 글에 대한 애정을 살려 1년 반쯤 한 출판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코미디의 길에는 양다솔 작가가 연 ‘스탠드업 코미디 워크숍’을 신청하며 우연히 들어섰다. “이런 워크숍이 또 열리긴 어렵지 않겠나”는 생각에 신청해 본 강의였다. 2022년 말 수강생들끼리 진행한 첫 ‘오픈마이크’에 원소윤은 예수님과 부처님을 ‘성애적 관점’에서 비교하는 농담을 준비해 갔다. 반응은 뜨거웠다. “도파민이 있더라고요. 죽음과 종교와 같은 금기를 건드리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제 정서에도 맞는다 싶었어요.”
원소윤은 “저는 지루한 것, 하기 싫은 일을 못 하는 편”이라며 “글 쓰는 일과 코미디는 앞으로도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작가 원소윤은 “신간이 기대되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앞으로 쓰고 싶은 것’을 묻자 아이디어는 끝없이 나왔다. “<옐로 페이스>(R. F. 쿠앙)처럼 술술 읽히는 소설이나,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로맨틱 트래지디(비극)도 해보고 싶고, 지역 공연 순회기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는 친구와 함께 스탠드업 여성 코미디언을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도 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는 일단 다음 달 30일·31일 서울코미디클럽에서 여는 첫 단독 공연 ‘원 펀치(ONE PUNCH)’를 잘 마치는 것이 목표다. 양일간 80석이 이미 전석 매진됐다.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볼 때 <호밀밭의 파수꾼> 등 책 속 ‘툴툴대고 시니컬한’ 화자가 툭 튀어나와 얘기하는 것 같은 기분을 받곤 한다고 했다. 관객들에게도 그런 재미를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제가 또 무대에선 굉장히 위악적인 페르소나로 다크한 농담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 블랙 코미디로 ‘공연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양극화가 극도로 진행된 근미래의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부유한 이들이 사는 신도심과 방치된 구도심의 격차는 크게 벌어지고 사람들은 한 도시 안에서도 ‘문제가 있는’ 지역의 위치를 알려주는 유료 지도앱 ‘세이프 시티’를 사용한다. 앱은 노후화와 안전도를 근거로 도시를 5등급으로 나눈다. 신시가지는 지도상에서 0등급으로, 파란색으로 칠해져 눈과 입이 활짝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표시된다. 가장 낙후한 5등급은 빨간 엑스(X)자로 표시됐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엑스 구역’이라 불렀다.
주인공은 유능한 경찰이었지만 주목받는 사건의 수사 실패로 좌천성 휴직을 하게 된 ‘그녀’다. 주인공의 대척점에 선 인물로 남편의 친구인 임윤성이 등장한다. 그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통해 인간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하거나 조절하는 ‘기억 교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임윤성은 언뜻 극단적 빈부격차로 분열된 도시의 문제에는 둔감해 보이는 사람이다.
휴직 후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그녀는 어느 날 충동적으로 구도심으로 향하고 폐건물에서 4·5 등급 구역의 여자 화장실만 골라 파괴하는 남성, 그리고 이 남성의 화장실 파괴를 막으려는 여성 노숙인들의 대치 상황을 마주한다.
그녀는 경찰의 본능으로 사건에 개입하지만, 이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는다. 정부는 기억 교정의 첫 실험자로 범죄자인 남성을 점찍는다. 범죄자의 재범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그녀는 인간 존엄성에 위배되는 행동이라며 기억 교정에 반대하지만, 임윤성은 그녀에게 사건의 ‘피해자로서 범인에 대한 기억 교정 시술을 지지한다고 증언하라’고 압박한다.
세이프 시티손보미 지음창비 | 248쪽 | 1만7000원
소설은 도시 양극화와 개발 문제, 그 과정에서 소외된 힘없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인간의 기억을 타자가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철학적인 문제 등을 망라해 다루려고 시도한다.
주인공이 여성 경찰이라는 것과 여자 화장실만 골라 파괴하는 연쇄 범죄의 등장도 젠더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벌어지는 여론 조작 등도 언급된다. 임윤성의 아내는 기억 교정에 반대하는 그녀를 설득하며 진실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사건의 실체가 진실보다는 각 진영의 편의대로 해석되는 현시대상을 풍자한 듯한 말이다. “진실은 선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물건과도 같은 거예요. 게다가 아주 연약한 물건이죠. 거기에 그냥 둬서도, 다른 누군가가 뺏어가게 놔둬도 안 되는 거예요. … 사람들을 봐요. 그날 밤 일을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사건과 관련된 기사나 영상에 댓글을 달면서 쾌감을 느끼거나 우월감을 느끼거나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 말이에요. … 진짜로 일어난 일을 알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 노트에서 손보미는 2013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거주했던 서울 용산구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한다. 용산은 2010년대 이후 부동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마포, 성동구와 함께 강남에 이어 집값 상승을 이끄는 지역으로 일컬어지며 ‘마용성’으로 불렸다. 각종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이뤄지며 최근 몇년 사이 초고층 빌딩이 급속도로 늘었다.
도시 개발이 도심의 낙후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작가는 용산에서 “서울 한복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겨운 분위기”를 풍기는 오래된 구도심의 풍경과 곧 신시가지의 중심이 될 “공사 중인 사십층짜리 건물”을 동시에 마주한다.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작가는 두 지점의 차이를 평가하려다 금세 자신의 그런 태도를 “오만불손”했다고 반성한다. 하지만 감각은 남는다.
용산에서 작가가 느낀 감각은 2016년 발표한 단편 ‘리틀 걸 블루’에 이어 이번 소설까지 이어졌다.
작가는 “어두운 밤, 탁한 하늘로 우뚝 솟은 건물, 그리고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 건물 옥상에서 거만하게 뿜어내는 빛의 궤적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며 “몇편의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그 오만한 시선이 나 자신의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세이프 시티’는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그런 참혹한 인정의 정점 속에서 쓴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흔아홉 번째 잔치가 시작됐다
■인간극장(KBS1 오전 7시50분) = 올해 아흔아홉 번째 여름을 맞는 조성임 할머니는 포대도 손수 옮길 정도로 기력이 좋다. 그러나 4년 전, 할머니는 신장이 망가져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그때 할머니를 모신 사람은 막내딸 유홍실씨(62)다. 홍실씨는 병상에 있던 어머니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어머니의 99세 생신을 맞아 홍실씨는 당시 찍어뒀던 어머니의 병실 영상을 가족들에게 선보인다.
진정한 쉼이 있는 금성산 술래길
■한국기행(EBS1 오후 9시35분) =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쉼’을 찾아 충남 금산으로 떠난다. 금산에는 금성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술래길’이 있다. 술래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꼭대기의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다. 술래길을 걸은 뒤에는 푸른 잔디 마당을 가진 절 신안사에 방문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금산의 명물인 인삼도 맛보며 기력을 회복한다.
머리는 스코티 셰플러(미국)라는데, 가슴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라 한다. 누가 올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최고 선수일까. 매년 시즌 말미에 등장하는 ‘올해의 선수’ 논쟁이 올해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게 됐다.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애슬론 스포츠’는 27일 “셰플러와 매킬로이가 수십년 만에 가장 치열한 ‘올해의 선수’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투표자들의 머리는 셰플러를 선택하는데, 가슴은 매킬로이 쪽으로 가고 있다”며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셰플러는 올시즌 4승(CJ컵 바이런 넬슨, PGA 챔피언십, 메모리얼 토너먼트, 디 오픈)을 거뒀고 그중 2승을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과 디 오픈에서 이뤘다. 한 해 2개 메이저대회를 모두 4타 차 이상으로 우승한 선수는 ‘골프 전설’로 불리는 벤 호건, 타이거 우즈(이상 미국) 이후 셰플러가 처음이다. CJ컵 바이런 넬슨에서 거둔 PGA 투어 최저타(31언더파 253타) 타이 기록, 54홀 리드 시 최근 11연속 우승 등의 기록은 셰플러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증명한다. 애슬론 스포츠는 “7개월간 거둔 시즌 4승, 메이저 2승만 해도 대부분 프로선수들이 평생 못 이룰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매킬로이는 올해 3승(AT&T 페블비치 프로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마스터스)을 거뒀고 11년 만에 메이저 우승으로 PGA 역사상 6번째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승수에서는 셰플러에 밀리지만 매킬로이가 마스터스 플레이오프에서 우승 퍼트를 넣은 뒤 그린에 무릎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역사적인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990년부터 시행된 PGA 투어 올해의 선수상(잭 니클라우스 트로피)은 오직 투어 선수들의 투표로만 결정되기에 현재로서는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고 누구도 말하기 어렵다.
변수가 하나 남았다. 2주 뒤부터 3주 연속 펼쳐지는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시리즈다. 1차전 페덱스 세인트주드 챔피언십, 2차전 BMW 챔피언십, 3차전 투어 챔피언십을 거쳐 올 시즌 PGA 투어 최고 선수를 가린다. 이 결과도 선수들의 ‘올해의 선수상’ 선정 표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셰플러와 매킬로이는 3차례씩 PGA 투어 올해의 선수에 뽑혀 11회 수상의 타이거 우즈에 이은 공동 2위 기록을 갖고 있다. 셰플러는 지난해까지 최근 3년 연속 주인공이었고, 매킬로이는 2019년 3번째 수상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여름도 상당히 길 것이라 예상을 했다. 무슨 정보와 자료 때문이 아니라 기후의 변화 폭이 매년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고, 봄 더위·가뭄과 이어 벌어진 무자비한 산불을 보면서 여름에는 해수면 온도가 올라 폭염과 폭우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했다. 예측하기 힘든 기후가 됐다고는 하지만 다르게 보면 예측이 더 쉬워진 측면도 있다. 아마 예측하기 힘든 것은 재난의 장소와 현상이다. 폭우가 어디에 얼마만큼 내릴지 기상청이나 기상 전문가들이 예측하지 못하게 된 상황은 그만큼 대비를 힘들게 한다. 그렇다고 일상의 생활을 재난 대비에 다 쏟아붓는 것도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새로운 재난 대응책 마련만 몰두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의 일상화를 적잖은 사람들이 ‘뉴노멀’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폭우로 인한 재난 상황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짚으면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이제 ‘안전뉴딜’이라고 했다. 간단히 말하면 기존의 재난 대응 시스템으로는 지금의 재난을 대비할 수 없으니 새로운 재난 대응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일 게다. 이런 진단은 비단 김 총리만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재난 보도 다음에 이와 비슷한 해법을 내놓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아픈 줄 모르는 병’을 발견하게 되는데, 병의 원인이 밝혀졌는데도 그 원인을 치유하는 대신 증상에 대한 처방만 남발한다는 병이다. 이게 단지 인식론적 오류일까?
기후변화가 사람의 심리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추울 때나 더울 때 자신의 상태만 돌아봐도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인데, 문제는 경험해보지 못한 기후의 장기 지속이 남긴 심리적, 정신적 상처일 것이다. 고 신영복 선생은 당신의 수감 생활을 돌아보며 겨울이 되면 차라리 인간이 된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눠야 추위를 이길 수 있지만 여름철에는 상대방의 몸이 닿는 것 자체가 불쾌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마음과 정신은 굳건한 바위라기보다는 물렁물렁한 진흙 반죽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외부 조건에 맞춰 그 상태와 형태가 변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한편으로 이런 물렁물렁함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석으로 요동하지 않는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무튼 평범한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의 발생에 심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흔들릴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상시적인 재난 상황이 ‘뉴노멀’이면 안 되는 이유는 그 언어에 지금껏 기후변화를 대해왔던 정치권력자들, 자본가들, 전문 지식인들, 그리고 제국적 생활양식을 누리고 있는 이들의 사고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지금껏 살던 대로 살자는 말을 하려고 기후재난 상태의 도래를 ‘뉴노멀’이라고 부르면서 적응을 먼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인 외면한 적응 논의는 ‘허상’
기후가 크게 변한 원인인, 근대 산업문명이 초래한 탄소 배출의 도미노 효과인 지구 기온 상승과 해수면 온도 상승, 그로 인한 대기 상태의 급변, 폭우, 폭염, 홍수, 산사태, 그리고 거기에 휩쓸려버린 생령들에 대해 먼저 내놓는 말이 ‘뉴노멀’이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이게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질서야. 그러니 적응해야지. 안전 문제는 새로운 안전 산업이 책임져줄 거야. 사실 근대국가의 복지 체제에는 이런 돌봄과 살림의 상품화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응? 그게 문제라고? 그럼 결함투성이인 인간이 아닌, 모든 것에 공정한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인공지능의 등장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 상황을 불러들일지에 대한 민주적인 대화도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공지능의 역사적 계보를 들춰보면 근대 자본주의가 이윤을 찾아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온 새로운 상품에 지나지 않으니까. 사실 인공지능 산업의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후과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다운 사고와 판단을 인공지능에게 일임한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가 인공지능처럼 판에 박힌 사고를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극단적인 기후변화로 지구의 순환 시스템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데 국가의 지배권력은 ‘안전’만 강조한다. 얼마나 인공지능적인가. 사실 진짜 안전은, 우리의 존재가 미증유의 모험 앞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갖는 것이지 안전의 가두리 속에서 단지 생존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재난 앞에서 당장의 안전은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radical) 안전과 안전이 삶에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보는 사고의 힘, 그리고 그것을 주제로 한 대화문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안전은 점점 국가의 제도와 자본의 인공지능에 종속될 것이다. 이제 안전도 민주주의와 만나야 한다. ‘뉴노멀’은 안전도 민중의 통치 안에 들어온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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