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재명표 123대 국정과제, 개헌·지방시대·AI강국 길 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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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위가 공개한 123개 국정과제는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집대성하고 구체화했다. 헌법 개정부터 코스피지수 5000 달성까지 전 분야가 망라됐지만, 불법계엄으로 무너진 한국 사회를 바로 세우고, 0%대로 추락한 경제성장률을 높여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치 분야에선 1호 국정과제로 제시한 권력분산형 개헌과 검찰·감사원·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이 핵심 과제로 담겼다. 경제 분야는 인공지능(AI)·에너지 고속도로 등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연구·개발 예산을 확대해 과학기술 세계 5대 강국 기치를 내걸었다. 사회 분야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 국민 안전에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산재를 획기적으로 줄이자고 했다. 균형성장을 위해 ‘5극3특’ 중심의 혁신·일자리 거점 조성과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으로 지방시대 초석을 깔고, 외교·안보 분야에선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제시했다. 정의롭고, 안전하고,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에 합당한 국정 방향 설정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관심을 모은 정부조직 개편 방안은 이날 발표에서 빠졌다.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로 분리하고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의 얼개는 사전에 대통령실에 보고됐다지만 벌써부터 공무원들의 부처 이기주의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심화되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관련 정책도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국정과제 실행 재원도 문제다. AI 육성과 서울대 10개 만들기,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등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으려면 5년간 210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기획위는 비과세·감면 정비 등으로 94조원, 지출 절감으로 116조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지만, 역대 정부가 늘 해오던 레퍼토리다. 이 대통령은 “씨를 한 됫박 뿌려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증세 대신 국채 발행을 시사했다.
경제와 민생을 나락으로 내몬 윤석열 정부도 장밋빛 보고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정과제가 말의 성찬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과제마다 구체적 실천 로드맵을 제시하고, 부처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국정과제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주식 양도소득세 같은 지엽적인 세금조차도 방향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정부와 여당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부터 실천해야 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4일 북·미 대화가 재개되려면 양국 간 ‘밀고 당기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지만 미국은 그럴 수 없다는 입장인 상황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조 장관은 이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개최한 브리핑에서 북·미 대화를 두고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한다면 핵보유국 자격을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까지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조 장관은 “그래서 (북·미 간) 여러 가지 밀고 당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뭔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북한은 최근에도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 등을 주제로 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입장을 내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완벽하게 비핵화를 전제로 해서만 협상할 수 없고, 핵군축 협상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북·미가) 어디선가 접점을 찾아서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조 장관은 오는 10월 말쯤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날 가능성을 두고는 “가정적인 상황이라 답변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조 장관은 다만 “외교는 희망을 근거로 정책을 만들면 안 되지만, 희망을 잊어서도 안 된다”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김 위원장을 APEC에 초청하는 문제를 두고 “그런 것을 꿈꾸고 해보려는 건 훌륭한 생각”이라며 “그러나 외교는 현실에 기반해서 해야 하니까 조심스럽게 관계 부처와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조 장관은 미국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동맹 현대화 문제를 실무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협상이 진행 중이라 상세한 내용을 말하기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에 이런 내용이 담길지를 묻는 말에 “포함할지 여부도 하나의 협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정상회담의 결과를 공동성명 등 어떤 형식으로 발표할지도 미국과 협의 중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정상회담 의제를 두고 “관세 협상의 결과와 관련한 중요한 내용을 (결과물에) 담을지, 방위비(국방비) 및 주한미군 문제 등 안보 이슈를 일관성 있는 문서로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당국자는 “이게 미국에 내주는 것처럼 비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라며 “미국과 협력해서 우리 국방력을 발전시키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조 장관은 일본과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관계 발전과 과거사 문제를 분리하는 ‘투 트랙’ 대응이 쉽지는 않다면서도 “한·일관계는 변모하는 국제질서와 경제안보 상황과 관련해 소통하고 필요한 협력을 해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과거사 문제는 잊지 않고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조 장관이 지난달 말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찾은 건 이 대통령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이 대통령이 이달 말에 일본에 이어 미국을 연쇄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 가지고 있던, 또는 잘못 입력된 우리 정부에 대한 편견이 일거에 깨끗하게 사라지리라 생각한다”라며 “이게 실용외교”라고 했다. 한·미·일 협력을 중시한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부가 중국에 기울어진 대외정책을 펼칠 것이란 우려를 씻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 장관은 중국과의 관계를 두고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나 이를 극복하고 일정 부분 협력할 필요가 있다”라며 “중국 측과 수시로 협의하고 필요하면 상호 방문하는 방향으로 실용적으로 접근해 잘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이 앞서 일본과 미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문제점을 두고 의견을 교환했지만 한·중·일 협력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긴장을 완화해야 할 필요성도 언급했다고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말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14일 김건희 여사를 구속 후 처음 불러 조사했다. 김 여사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조사는 2시간여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문홍주 특검보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오늘(14일) 피의자 김건희씨를 상대로 부당선거 개입과 공천 개입 관련한 조사를 진행했다”며 “오늘 오전 9시56분부터 조사를 시작해 오전 11시27분 오전 조사를 마쳤고, 오후 1시32분 조사를 재개해 오후 2시10분에 오후 조사를 마쳤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오는 18일 김 여사를 추가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김건희 여사에게 5000만원대 명품 시계를 전달했다는 사업가 서모씨가 시계 대금 3000만원을 아직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영부인 할인’을 받아 3500만원에 시계를 사서 줬는데 김 여사가 500만원만 줬다는 것이다. 서씨가 운영하던 업체는 2022년 5월 미국의 한 로봇개 회사와 총판 계약을 체결한 뒤 같은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수의계약을 맺고 로봇개 경호를 시범운영하기로 했다.
1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씨는 지난 8일 민중기 특별검사팀 조사에서 “김 여사로부터 시계 구매를 부탁 받았을 때 500만원만 전달받았다”며 “3000만원은 내 돈으로 우선 구매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이후 김 여사에게 시계를 전달할 때 ‘나중에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결국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김 여사에게 ‘어떻게 해서 주겠다’는 얘기까지 들었으니까 (3000만원은) 제가 김 여사에게 받아야 하는 돈”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 약속 내용에 대해선 파악되지 않았다.
서씨는 “이후 로봇개 사업 특혜 논란으로 사이가 멀어지면서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서씨는 2022년 5월쯤 김 여사의 회사인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에서 김 여사를 만나 시계 구매 부탁을 받고 5만원권 다발로 현금 5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해 9월 김 여사를 만나 직접 전달했을 때 김 여사에게 나머지 돈 지급을 약속받았으나 현재까지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서 특검은 지난달 25일 김 여사 오빠 김모씨의 장모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이 시계의 상자와 정품 보증서를 확보했다. 특검은 이를 근거로 구매자를 추적해 서씨를 특정했다. 특검은 시계 구매 및 전달이 청탁을 위한 것인지 의심하는 한편 자금의 출처와 시계 행방 등을 추적하고 있다.
김 여사 측은 “현재 구속된 상황이므로 변호인 접견을 통해 추후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전날 발부됐고 이날 김 여사는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됐다. 오는 14일 김 여사는 구속 후 첫 소환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재명 정부의 첫 고비는 예상대로 ‘인사(人事)’였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한 불리함도 있지만, ‘실용’을 국정과 인사 지표로 앞세웠을 때 예감은 불길했다. 흠 없는 지도층 인사들이 드문 현실과 정책 자질보단 도덕성이 전시되는 인사청문회가 오버랩되면서 ‘또 칼춤을 보겠구나’ 했다. 예감대로 장관 후보자 두 명을 포함해 4명이 낙마했다. 과거 막말에 발목 잡힌 한 차관급 인사는 꾸역꾸역 직을 이어갈 태세지만 정권의 내상이 작지 않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새 정부 인사가 (그래도) 정정 메커니즘은 작동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만으로 ‘다행이다’ 하기엔 되풀이되는 인사 난장이 눈에 밟힌다. 인사 시스템에서 고칠 부분은 없을까. 언제까지 ‘내로남불’의 여야 공수 교대를 반복할 것인가.
인사는 어느 정권이나 ‘인재풀의 한계’라는 현실적 조건이 작동한다. 조선시대 당쟁이 조정 인사권에서부터 시작됐듯, 진영 다툼이 심한 정치문화일수록 풀은 더욱 협소해진다. 그래서 인재풀을 얼마나 넓히느냐가 인사 평가의 관건이 된다. ‘깜짝 인사’의 파격이 주목받는 건 그 때문이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은 파격이었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 인사실패 책임을 분명히 한 것도 그동안 없던 관행 파괴였다. 하지만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정리를 미적거려 ‘측근 불패’ 수렁에 빠진 건 낡은 행태의 답습이었다. 떨어질 줄 모르던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율마저 꺾였다.
이쯤되니 여당에선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 검증 인사청문을 하자는 제안이 리메이크 가요처럼 흘러나온다. 공감하는 점도 있지만, 방안 자체는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 야당과 국민 절반이 동의하지 않는다. 도덕성과 정책 역량의 경계가 딱 떨어지게 나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실상 도덕성 의혹 대부분은 인사청문 무대 밖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제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사청문이 ‘도덕군자’를 뽑자는 것은 아니다. 도덕군자가 공직에 최적화된 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플라톤이 말한 ‘철인’도 도덕군자는 아니다. 사적 이해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이성과 논리로 ‘공(公)’을 이룰 수 있는 이를 의미한다. 공직 도덕성은 결국 공사를 명확히 가릴 줄 아는 분별력에 방점이 있다. 인사청문에서 도덕성이 중요한 이유도 분별력을 가늠하는 데 도움 되기 때문이다. 콩 심은 데 콩 나듯 지금까지 입신출세에만 목매던 이가 갑자기 이타적인 공복이 되긴 어렵다.
현실로 돌아가 도덕군자가 많지도 않지만 있다해도 꼭 최적이 아니라면, 감내할 만한 도덕성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 ‘정도’라는 말의 모호함처럼 그 감각은 천차만별이다. 대상 공직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부하를 위할 줄 모르는 리더십은 국방·안보 공직엔 절대적 결격사유지만, 경제·산업 관련 공직은 좀 다를 수 있다. 부하(박정훈 대령)를 희생시켜 자기 안위 도모에 급급했던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 무자격인 것처럼 말이다.
정치가 인사의 합리적 기준을 토론하고 세울 필요가 있다. 첫번째로 그 공직의 본질에 반하는 도덕적 의혹은 아무리 작은 흠결이라도 용납해선 안 된다. 금전에 대한 민감성은 세제·예산 같은 국가 자원 배분을 다루는 공직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한다. 이명박·윤석열 정부 인사들이 그러했듯 투기·투자에 능하고 자산이 많은 장관이 관련 세금을 낮춘다면 흑심을 의심하지 않겠는가. 반면 정치 공방 대상으로 전락한 위장전입이나 농지법 위반은 디테일을 따져 용인해선 안 될 경우만 네거티브로 규정하는 게 나을 것이다.
두번째는 정권들이 도덕성 의혹의 엄폐물로 삼아온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아무 성과나 단순 경력을 전문성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 ‘갑질’이 가볍지 않은 건 그것이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강압과 독선으로 쥐어짜 만든 성과가 온전할 리 없다. 인사를 다루는 수장이 좁은 지식으로 편견에 차 있다면 고르게 인재를 평가하겠는가.
세번째로는 도덕성과 정책 철학이 겹쳐지는 영역은 반드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대표적으로 공직 후보자의 말과 글, 행동이다. 거기에 인간적 품격은 물론 정책과 국정에 대한 바른 판단과 분별력이 담겨 있다.
이런 정도 원칙에 정치권이 합의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관직을 정권의 전리품이나 파당의 여물통쯤으로 여기려는 심산이 아니라면 말이다. 부디 인사청문이 정국 주도권 다툼 도구로 분칠되지 않고, 인사 기준 설정의 공론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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